“채권은 안전자산”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들려서 거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래서 안정성을 원하는 투자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자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2022년 미국 장기 국채 ETF인 TLT가 한 해에 30%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한국 장기채 ETF도 비슷한 시기 큰 폭의 마이너스를 보였다. ‘안전하다’고만 알고 들어간 사람일수록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채권이 분산투자에 유용한 자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안전자산이라는 단어 한 줄 뒤에 어떤 구조적 리스크가 숨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의도치 않은 손실을 떠안게 된다.
채권에 대한 흔한 오해
사람들이 채권에 대해 가장 자주 갖는 오해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만기까지 들고 있으면 원금이 보장된다’는 인식이다. 이는 발행자가 부도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만 맞는 말이다. 회사채는 발행 회사가 사라지면 원금 자체가 회수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채권은 가격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만기가 짧은 채권은 그렇지만, 만기 10년이 넘는 장기 국채는 주식만큼 변동이 큰 경우가 적지 않다. 셋째, ‘주식이 떨어질 때 채권은 항상 오른다’는 가정이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두 자산이 동시에 빠지는 일이 실제로 자주 발생했고, 2022년이 가장 분명한 예시다.
채권 가격이 움직이는 진짜 원리
채권 가격은 시장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오르면 이미 발행된 낮은 이자의 채권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져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가 내려가면 그 반대가 된다. 이 가격 변동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듀레이션’이라는 개념이다. 듀레이션이 10년이라는 말은 시장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채권 가격이 약 10% 빠진다는 뜻이다. 즉 만기 30년 국채 ETF처럼 듀레이션이 17~20년에 가까운 상품은 금리 1%포인트 변동에 가격이 17~20% 출렁일 수 있다. 만기까지 들고 있을 생각이 아니라 중간에 매도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 계산이 곧 손익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2022년 미국·한국 장기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4.25%포인트 올렸다. 1980년대 이후 가장 가파른 인상 속도였다. 그 결과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를 담는 TLT는 한 해 약 -31%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한국 KODEX 국고채30년액티브도 -25% 수준의 손실이 발생했다. 동시에 S&P500 지수도 약 19% 빠졌다. ‘주식이 떨어질 때 채권으로 헤지한다’는 전통적인 60/40 포트폴리오의 가정이 한 해 만에 깨진 것이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통제되지 않으면 주식과 장기채가 같은 방향으로 빠질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사실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산이 같은 시기에 가장 큰 폭으로 빠지는 일은, 자산배분의 전제 자체를 다시 점검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채권을 안전자산으로 활용하는 올바른 방법
채권을 분산투자에 쓰려면 만기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단기채(만기 1~3년)는 금리 변동에 거의 흔들리지 않아 현금에 가까운 안정성을 제공한다. 중기채(3~7년)는 약간의 가격 변동을 감수하는 대신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장기채(10년 이상)는 사실 안전자산이라기보다 ‘금리 인하에 베팅하는 자산’에 가깝다. 금리가 빠질 것으로 본다면 자본 차익까지 노려볼 수 있지만, 반대로 움직이면 큰 손실이 따른다. 또한 회사채는 신용등급이 같이 따라붙는다. 같은 ‘AAA’라도 발행 주체가 정부냐 기업이냐에 따라 위험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자산배분에서 채권 비중을 짤 때는 단기·중기 위주로 두고, 장기채는 금리 사이클을 의식하며 일부만 운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함정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은 ‘높은 이자율’에 끌려 만기가 매우 긴 채권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을 사는 경우다. 만기 30년 채권은 이자가 더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30년 동안 금리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신용등급 BB 이하의 하이일드 채권 역시 이자가 5~8%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부도율이 급격히 높아져 주식과 비슷한 수준의 손실을 본다. 또 하나 자주 놓치는 부분이 환헤지 여부다. 미국 국채에 직접 투자하면 환율이 같이 움직이는데, 환헤지를 하지 않은 상품은 채권 가격이 올라도 원·달러 환율이 빠지면 수익이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환헤지가 적용된 상품은 헤지 비용 때문에 표면 이자보다 실제 수익률이 낮아진다. 채권은 분명 자산배분의 핵심 도구이지만, ‘안전하다’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종류와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결국 안전자산은 ‘어떤 채권이냐’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는 자산이라는 점이, 이 시장에서 손실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