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한 푼도 올리지 않았는데, 재계약을 하려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다시 가입하려다 “가입이 어렵다”는 답을 듣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집에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거부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집이 아니라 공시가격과 보증금의 비율이다. 2024년 5월부터 적용된 이른바 ‘126% 룰’ 때문에, 예전 같으면 문제없이 들어가던 보증이 지금은 막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보증금은 그대로인데 왜 가입이 거절될까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어주는 상품이다. 그동안 빌라·다세대 등 비아파트는 시세를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가입 한도를 정해 왔다.
예전에는 그 한도가 넉넉했다. 공시가격의 150%, 사실상 집값의 100%까지 보증금을 잡아 줬기 때문에 어지간한 전세는 다 가입이 됐다. 그런데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번지면서 HUG가 내어 준 돈이 폭증했다.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대위변제액은 2022년 약 1조원에서 2023년 3조5544억원으로 1년 만에 세 배 넘게 뛰었다. 보증 사고가 이렇게 커지자 정부는 “보증금이 집값보다 큰 깡통전세까지 보증해 주니 사고가 난다”고 보고, 가입 문턱 자체를 높였다.
126% 룰이 정한 가입 가능한 보증금의 상한
핵심 변화는 두 가지다. 첫째, 비아파트의 1순위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췄다. 둘째, 담보인정비율을 100%에서 90%로 내렸다. 이 둘을 곱하면 한도가 나온다.
공시가격 × 140% × 90% = 공시가격의 126%. 즉 내 전세보증금이 그 집 공시가격의 126%를 넘으면 반환보증에 들 수 없다는 뜻이다. 종전 150% 기준과 비교하면 가입 가능한 보증금 상한이 한 번에 24%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보증금을 올린 적이 없어도, 룰이 바뀌었기 때문에 같은 집·같은 금액이 갑자기 ‘한도 초과’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선순위채권도 같이 본다. 집에 잡힌 근저당(집주인의 대출)이 있으면 그 금액을 먼저 빼고 남는 한도 안에서만 보증금을 인정한다. 그래서 대출이 많이 낀 집은 공시가격이 높아도 실제 가입 한도가 확 쪼그라든다.
공시가격 2억 빌라로 계산해보는 실제 한도
숫자로 보면 체감이 분명해진다. 공시가격이 2억원인 빌라를 예로 들어 보자.
종전 기준에서는 공시가격의 150%, 사실상 집값의 100%까지 잡아 줘서 전세보증 가입 한도가 2억8000만원 안팎이었다. 그런데 126% 룰을 적용하면 2억 × 126% = 2억5200만원으로 떨어진다. 같은 집인데 가입 가능한 보증금이 약 2800만원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의 전세 시세는 그만큼 빨리 내려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빌라에 2억6000만원에 전세로 들어가려는 세입자라면, 종전 기준으로는 가입이 됐겠지만 지금은 한도(2억5200만원)를 800만원 초과해 거절된다. 보증을 받으려면 보증금을 2억5200만원 이하로 낮추거나, 차액을 월세로 돌리는 식으로 계약 조건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근저당이 끼면 한도는 더 줄어든다. 같은 공시가격 2억원 빌라에 집주인 대출(선순위채권) 5000만원이 잡혀 있다고 해 보자. 126% 룰로 산정한 한도 2억5200만원에서 선순위채권 5000만원을 먼저 빼면, 내 보증금으로 인정되는 금액은 2억200만원까지로 떨어진다. 등기부등본만 떼어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걸 확인하지 않고 “공시가격이 높으니 괜찮겠지” 하고 계약했다가 거절당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집값이 아니라 ‘내 보증금보다 앞순위에 얼마가 걸려 있느냐’가 보증 가입의 실질적인 관문인 셈이다.
더 좁아질 수 있는 문, 112% 룰 논의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HUG는 재정 부담이 계속되자 담보인정비율을 현행 90%에서 80%까지 더 내리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이 경우 공식은 공시가격 × 140% × 80% = 공시가격의 112%가 된다.
한 분석에서는 이 112% 룰이 그대로 적용되면 빌라 10채 중 7채가 전세보증 가입이 불가능해진다는 추정이 나왔다. 보증 사고를 줄이려는 의도지만, 그만큼 보증에 못 드는 비아파트 세입자가 급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HUG의 보증 사고도 여전히 크다. 한 해 1~10월 기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이 4조291억원, 사고 건수가 1만8687건, 대위변제액이 3조3271억원에 달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한 가입 기준이 다시 강화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은 가입이 되는 집이라도, 재계약 시점에는 룰이 바뀌어 거절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파트라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126% 룰’은 비아파트에 적용되는 기준이지만, 아파트 세입자도 같은 원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파트는 KB시세나 실거래가 같은 시세를 우선 적용하지만, 결국 ‘보증금이 집값 대비 너무 높으면 안 된다’는 원칙은 동일하다. 전세가율이 높은 단지, 즉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80~90%에 육박하는 곳은 집값이 조금만 내려도 보증금이 집값을 넘어서는 깡통전세가 되기 쉽다. 실제로 보증료율 개편의 기준선이 전세가율 70%라는 점은, HUG가 전세가율 70%를 넘는 순간부터 위험 구간으로 본다는 신호다. 내가 들어가려는 집의 전세가율이 70%를 넘는다면, 보증 가입 가능 여부와 별개로 보증금 회수 위험 자체를 한 번 더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전세가율이 높은 신축 빌라는 분양가를 부풀린 뒤 시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수법에 악용되기도 했다. 공시가격이 아직 안 나온 신축은 감정평가액 등 다른 기준으로 한도를 잡는데, 이 과정에서 한도가 생각보다 낮게 나와 거절되는 일이 잦다. 신축일수록 ‘공시가격이 곧 나올 테니 그때 가입하면 된다’는 말을 믿지 말고, 계약 전에 HUG 안심전세포털이나 지사에 직접 가입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편이 안전하다.
흔히 놓치는 함정과 거절을 피하는 확인 순서
가장 흔한 오해는 “보증료만 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보증료를 낼 의사와 무관하게, 보증금이 한도를 넘으면 가입 자체가 안 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뒤에야 이 사실을 알면 이미 늦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낮춰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게 신청 기한이다. 신규 계약은 잔금지급일과 전입신고일 중 늦은 날로부터 전세계약기간의 2분의 1이 지나기 전에 신청해야 한다. 2년 계약이면 사실상 입주 후 1년 안에 가입을 마쳐야 한다는 뜻이다. “나중에 천천히 들면 되지”라고 미루다 기한을 넘기면 그 계약은 영영 보증을 못 받는다. 입주와 동시에 가입을 진행하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안전하다.
보증료 부담도 2025년 3월 31일부터 달라졌다. HUG는 보증료율을 기존 연 0.115~0.154%에서 연 0.097~0.211%로 개편해, 전세가율 70%를 기준으로 안전한 집은 최대 20% 깎아 주고 위험한 집은 최대 30% 더 받는 구조로 바꿨다. 쉽게 말해 깡통전세에 가까울수록 보증료를 더 내게 되니, 보증료가 비싸게 나온다면 그 자체가 ‘이 집이 위험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대신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이미 낸 보증료의 전부(최대 40만원)를 돌려주는 지원을 2025년 3월 31일 이후 가입자부터 운영한다. 보증 한도는 수도권 7억원, 비수도권 5억원이 기준이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한 가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단 한 가지만 먼저 계산하면 거절의 상당수는 피할 수 있다. 그 집의 공시가격 × 1.26과 내 전세보증금을 비교하는 것이다. 공시가격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에서 주소만 넣으면 무료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이 2억3000만원인 집이라면 가입 한도는 약 2억8980만원이다. 내 보증금이 이보다 낮으면 일단 1차 관문은 통과다. 여기에 등기부등본을 떼서 근저당(집주인 대출)이 얼마나 잡혀 있는지 확인하고, 그 금액만큼 한도에서 빠진다는 점까지 계산하면 거의 정확하다. 한도를 넘는다면 계약 전에 보증금을 낮추거나 일부를 월세로 돌려 달라고 요구할 협상 카드가 생긴다. 보증은 도장을 찍기 전에 결정되는 것이지, 찍은 뒤에 신청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단 5분의 계산이 수억원의 보증금을 지키는 안전장치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