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저축과 IRP에 매년 꼬박꼬박 돈을 넣으면서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얼마를 돌려받느냐’다. 세액공제로 연말정산 때 100만 원 가까이 환급받았다는 후기를 보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런데 정작 이 돈을 다시 꺼내 쓰는 노후에, 받는 단계에서 세율이 세 배로 뛰어버리는 ‘절벽’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지나간다. 한 해에 받는 연금을 단돈 몇만 원 더 받았을 뿐인데 세금이 수백만 원씩 늘어나는 구조다. 넣을 때만 똑똑하고 뺄 때는 무심하면, 애써 쌓은 절세 효과가 마지막 순간에 새어 나간다.
왜 같은 통장에서 꺼낸 돈인데 세율이 달라질까
연금저축과 IRP처럼 세액공제를 받은 계좌에서 연금 형태로 돈을 받으면, 일반적인 이자·배당 소득과 달리 아주 낮은 ‘연금소득세’가 매겨진다. 세율은 나이가 많을수록 낮아지는데, 만 55세부터 69세까지는 5.5%, 70세부터 79세까지는 4.4%, 80세 이상은 3.3%다. 1억 원을 굴려 한 해 500만 원을 연금으로 받는 65세라면 세금은 27만 5천 원 수준에 그친다. 은행 예금 이자에 붙는 15.4%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부담이다. 여기에 평생 나눠 받는 종신형으로 설계하면 55세 이상 구간에서 4.4%가 적용돼 부담이 한 번 더 낮아진다. 이렇게 낮은 세율로 원천징수만 하고 납세 의무가 끝나는 것을 분리과세라고 한다. 다른 소득과 합쳐 누진세율로 다시 계산하지 않으니 종합소득세 신고로 골치 아플 일이 없다는 뜻이고, 사적연금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이 분리과세 종결에 있다.
문제는 이 저율 과세가 ‘무제한’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세액공제를 받은 원금과 그 운용수익에서 나오는 연금은 한 해 합산 1,500만 원까지만 이 낮은 세율로 끝낼 수 있다. 이 1,500만 원은 2024년 세법 개정으로 종전 1,200만 원에서 올라온 금액이다. 그리고 이 선을 1원이라도 넘기는 순간, 그해 받은 사적연금 ‘전액’에 대해 과세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부만 넘는 부분이 아니라 받은 돈 전체가 다른 규칙으로 넘어간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달에 1만 원 더 받았다가 세금 200만 원이 늘어나는 계산
구체적인 숫자로 따져 보자. 만 65세인 김 씨가 연금저축과 IRP에 모은 돈으로 한 해 정확히 1,500만 원을 연금으로 받는다고 하자. 이 경우 5.5%의 연금소득세만 떼고 끝난다. 세금은 약 82만 5천 원이다. 매달 125만 원씩 받으면서 연간 세 부담이 100만 원이 채 안 되니 만족스럽다.
그런데 같은 김 씨가 생활비가 빠듯해 한 해 1,800만 원을 받기로 했다고 하자. 1,500만 원이라는 선을 넘었기 때문에 이제 1,800만 원 전체가 종합과세 대상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전액에 대해 16.5% 단일세율로 분리과세를 선택해야 한다. 16.5%를 택하면 세금은 약 297만 원이다. 1,500만 원만 받았을 때의 82만 5천 원과 비교하면 214만 원 넘게 더 내는 셈이다. 더 충격적인 건 경계선 바로 근처다. 연 1,500만 원과 1,501만 원의 차이는 받은 돈으로는 1만 원이지만, 세금으로는 5.5% 적용분과 16.5% 적용분의 차이만큼 수백만 원이 벌어질 수 있다. 한 달에 1만 원도 안 되는 차이가 세금에서는 절벽을 만든다.
물론 1,500만 원을 넘겼다고 해서 모두가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김 씨에게 국민연금 말고 다른 소득이 거의 없다면, 1,800만 원 전부를 종합과세로 계산했을 때 기본공제와 연금소득공제를 빼고 나면 실제 세 부담이 16.5%보다 낮게 나올 수도 있다. 반대로 임대소득이나 사업소득이 넉넉한 사람은 종합과세로 가면 누진세율이 30%를 훌쩍 넘길 수 있어, 16.5% 분리과세를 택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같은 1,800만 원을 받아도 그 사람의 다른 소득 상황에 따라 정답이 갈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한도를 넘길 것 같다면 막연히 겁먹기보다 두 방식을 모두 계산해 비교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흔히 착각하는 세 가지, 국민연금까지 합치는 게 아니다
이 1,500만 원 한도를 두고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있다. 첫째, 국민연금을 포함해서 계산하는 줄 아는 경우다. 그렇지 않다. 이 한도는 어디까지나 세액공제를 받은 사적연금, 즉 연금저축과 IRP의 공제받은 원금과 운용수익에서 나오는 연금에만 적용된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은 별도의 과세 체계를 따르므로 이 1,500만 원 계산에 넣지 않는다.
둘째, IRP에 들어간 돈이 전부 한도에 잡힌다는 오해다. IRP에는 내가 세액공제를 받으려고 넣은 돈도 있지만,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이 굴러 들어온 부분도 섞여 있다. 이 퇴직금 재원에서 나오는 연금은 1,500만 원 한도와 무관하게 별도의 퇴직소득세 체계로 과세된다. 그러니 내 IRP 잔액 전부를 한도 안에 넣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자기 계좌에서 ‘세액공제 받은 적립금’이 얼마인지 구분하는 게 먼저다.
셋째, 1,500만 원을 넘으면 무조건 높은 종합과세로 끌려간다는 공포다. 2024년 개정으로 한도를 넘겨도 16.5% 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소득이 많아 종합과세 누진세율(지방세 포함 6.6%부터 49.5%까지)이 16.5%보다 높게 나올 사람이라면 16.5% 분리과세가 방패가 된다. 반대로 다른 소득이 거의 없는 사람은 종합과세로 계산해도 세 부담이 16.5%보다 낮을 수 있다. 둘 중 유리한 쪽을 고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절세의 여지다.
급하다고 한꺼번에 빼면 더 큰 세금이 기다린다
절벽은 1,500만 원 한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목돈이 급하다고 계좌를 헐어 연금 형식이 아닌 일시금으로 빼면, 세액공제를 받았던 원금과 운용수익에는 16.5%의 기타소득세가 붙는다. 게다가 이건 분리과세로 끝나서 다른 소득과 합산되지는 않지만, 어렵게 쌓아 온 저율 과세의 기회를 한 번에 날려 버리는 선택이다. 정해진 연간 연금 수령 한도를 넘겨 인출한 금액 역시 같은 16.5% 기타소득세 대상이 된다.
다만 예외는 있다. 본인이나 부양가족의 의료비로 쓰기 위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출하거나, 천재지변, 가입자의 사망·해외이주, 파산 같은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면 이런 불이익 없이 낮은 연금소득세율만 적용받을 수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같은 돈이라도 ‘연금으로 천천히’ 받으면 3.3~5.5%, ‘목돈으로 급하게’ 빼면 16.5%다. 인출 방식 하나가 세율을 세 배 가까이 갈라놓는다.
오늘 당장 점검할 수 있는 분산 전략
핵심은 한 해에 받는 사적연금을 1,500만 원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수령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연금을 10년에 몰아 받으면 한 해 수령액이 커져 한도를 넘기기 쉽지만, 20년, 30년으로 길게 펴면 매년 받는 금액이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연금 수령 연차가 길수록 같은 적립금이라도 한도 안에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부부가 각자 계좌를 가진 경우라면 두 사람으로 나누는 것도 효과적이다. 한 사람 계좌에서 3,000만 원을 받으면 절반 가까이가 절벽 너머로 넘어가지만, 부부가 각각 1,500만 원씩 받으면 둘 다 저율 과세로 끝난다. 같은 가구 소득인데 누구 이름으로 받느냐에 따라 세금이 갈린다. 또 연금 개시 시점을 늦춰 70세 이후에 받기 시작하면 세율 구간 자체가 5.5%에서 4.4%로 내려간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만하다.
수령 방식을 정액형 대신 운용 성과에 따라 받는 방식으로 조절하거나, 여러 금융사에 흩어진 계좌의 개시 시점을 한 해에 몰리지 않게 어긋나게 설계하는 것도 한도 관리에 도움이 된다. 한 해에 연금저축에서 1,000만 원, IRP에서 800만 원을 동시에 받으면 합산 1,800만 원으로 절벽을 넘지만, 두 계좌의 개시 시기를 몇 년 벌려 두면 매년 수령액을 한도 아래로 눌러 둘 수 있다. 중요한 건 받기 시작한 다음에는 설계를 바꾸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수령을 개시하기 전, 즉 아직 적립 단계에 있을 때 미리 그림을 그려 두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노후 세 부담은 매년 수백만 원씩 벌어진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입한 연금저축·IRP의 잔액과 예상 수령 기간을 가지고, 내가 노후에 한 해 얼마를 받게 될지 거칠게라도 나눠 보는 것이다. 적립금을 수령 연수로 나눈 값이 1,500만 원에 가깝거나 넘는다면, 지금부터 수령 기간을 늘리거나 부부 분산을 설계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 넣을 때 돌려받은 환급액에만 기뻐하지 말고, 뺄 때 새어 나갈 세금을 미리 막는 것이 진짜 연금 설계의 완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