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DB형과 DC형, 같은 회사에서도 갈리는 선택의 기준

퇴직금 제도가 퇴직연금으로 바뀐 지 20년이 넘었지만, 정작 본인이 가입한 유형이 DB형인지 DC형인지 모르는 직장인이 적지 않습니다. 둘 다 퇴직 후 받는 돈이라는 점은 같지만 운용 방식과 수령액이 결정되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고, 그 차이가 노후 자금 수천만원의 격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회사가 두 가지를 모두 운영하는 경우 직원이 직접 선택해야 하는데, 이 선택을 별다른 고민 없이 넘기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의 개요

DB형(확정급여형)은 퇴직 시점의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퇴직급여가 정해지는 구조입니다.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고 운용 결과에 대한 책임도 회사가 집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내 임금이 오르면 퇴직금도 오른다”는 단순한 공식이 적용됩니다.

DC형(확정기여형)은 매년 회사가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근로자 개인 계좌에 입금하고, 그 돈을 직원이 직접 선택한 상품(예금·펀드·ETF 등)으로 운용합니다. 운용 수익도 손실도 모두 개인이 부담합니다. 퇴직 시점의 평가금액이 곧 퇴직급여가 됩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적립금 비중은 DB형이 약 55%, DC형이 약 32%, 나머지가 IRP 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대기업·공공기관에서는 DB형 비중이 높고, 중견기업·중소기업에서는 DC형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DB형의 구체적 장단점

DB형의 가장 큰 장점은 예측 가능성입니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이 거의 그대로 지급되기 때문에, 임금상승률이 꾸준한 직장이라면 받는 돈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30년 근속에 최종 월급여가 600만원이라면 단순 계산으로 1억 8,000만원 수준이 됩니다. 운용 손실이 나도 회사가 부족분을 채워야 할 의무가 있어 원금 손실 위험이 없습니다.

단점은 임금상승이 정체되거나 호봉제 폐지·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마지막 3개월 임금이 줄어들 때 드러납니다.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에 평균임금이 가장 높았다면, 그 시점에 DC형으로 전환하지 않고 DB형을 유지할 경우 퇴직금이 깎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또한 운용 수익이 회사 몫이라 시장이 좋아도 직원이 추가 수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DC형의 구체적 장단점

DC형의 핵심 매력은 운용에 따라 자산이 불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년 들어오는 적립금을 본인이 직접 굴리기 때문에, 장기 분산투자에 익숙한 직장인이라면 정기예금 수준을 넘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통계 기준으로 최근 10년 DC형 평균 수익률은 연 2%대지만, ETF 등 실적배당형을 활용한 가입자 상위 그룹은 연 5~7%대를 기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임금피크제·정년퇴직·이직 등 임금이 가장 높은 시점이 퇴직 시점과 일치하지 않을 때 DC형이 유리합니다.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입금하기 때문에, 마지막 임금이 줄어도 이미 적립된 금액과 운용 수익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단점은 분명합니다. 운용을 방치하면 정기예금만 굴러가면서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고, 반대로 무리한 투자로 손실이 나도 회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통계상 DC형 가입자의 8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에 자금을 묶어 두고 있어, 제도 취지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옵니다.

상황별 선택 기준

임금상승률이 호봉제 또는 연공서열에 따라 매년 5% 이상 꾸준히 오르고, 60세까지 임금이 깎일 일이 없는 공공기관·대기업 직원이라면 DB형이 일반적으로 유리합니다. 본인이 운용에 관심이 없거나 시간을 쓰기 어려운 경우에도 DB형이 안전한 선택입니다.

반면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거나 50대 중반 이후 임금이 정체·하락하는 구조라면 DC형이 결과적으로 더 큰 금액을 만들어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또한 이직이 잦은 직군이거나 본인이 ETF·펀드 운용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DC형의 운용 수익을 노려볼 만합니다. 임금피크제 진입 전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점이 평균임금이 가장 높을 때이며, 이 시점을 놓치면 손해를 보는 경우가 흔합니다.

결론 — 나에게 맞는 선택

“DB가 좋다”, “DC가 좋다”라는 단일한 정답은 없습니다. 핵심은 본인의 임금 곡선과 운용 의지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회사 인사팀이나 노무담당자에게 본인의 가입 유형을 확인하고, 임금피크제 적용 여부와 전환 가능 시점을 함께 점검하세요. 50대에 접어든 직장인이라면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적립금 평가액과 임금 추이를 비교해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같은 회사, 같은 연봉이라도 이 선택 하나로 노후에 받는 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