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1억 퇴직금인데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수백만원 갈리는 이유

2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퇴직금 1억원이 확정됐다고 해보자. 대부분은 통장에 한 번에 찍히는 그 숫자만 본다. 그런데 똑같은 1억원인데, 옆자리 동료는 같은 금액을 받고도 세금을 수백만원 덜 냈다. 차이는 운이 아니라 ‘받는 방법’ 하나였다.

퇴직금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목돈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돈에 붙는 세금 규칙은 매달 받는 월급에 붙는 세금과 완전히 다르게 작동한다. 규칙을 모르면 손해를 봐도 손해인 줄 모른 채 지나간다. 이 글에서는 왜 같은 퇴직금인데 손에 쥐는 금액이 갈리는지, 그리고 퇴직을 앞둔 사람이 오늘 당장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실제 숫자로 짚어본다.

퇴직금에 붙는 세금은 처음부터 둘로 갈린다

퇴직금을 받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회사가 적립한 퇴직급여는 받는 순간 두 갈래 길이 생긴다는 점이다. 하나는 통장으로 바로 받는 ‘일시금’, 다른 하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로 옮긴 뒤 55세 이후 나눠 받는 ‘연금수령’이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금액이라도 떼이는 세금이 달라진다.

핵심 규칙은 이렇다. 퇴직급여를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연금수령 1년차부터 10년차까지는 30%, 11년차 이후부터는 40% 깎아준다. 반대로 일시금으로 한 번에 받으면 이 감면은 단 한 푼도 적용되지 않고 퇴직소득세를 전액 내야 한다. 같은 돈을 받는데도 한쪽은 정가, 한쪽은 할인가인 셈이다.

여기에 2026년 1월 1일 이후 연금수령분부터는 새로운 구간이 추가됐다. 21년차 이후 수령액에 대해서는 퇴직소득세를 50%까지 감면해준다. 즉 길게 나눠 받을수록 깎이는 폭이 30%에서 40%, 다시 50%로 점점 커지는 구조다. 정부가 “퇴직금을 한 번에 쓰지 말고 노후 연금으로 오래 쓰라”는 신호를 세금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1억 퇴직금, 받는 방법에 따라 이렇게 갈린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계산해보자. 근속 20년, 퇴직금 1억원을 받는 김 부장의 경우다. 이 조건에서 산출된 퇴직소득세가 약 32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실제 세액은 근속연수와 금액에 따라 달라지므로 정확한 숫자는 회사에서 받는 퇴직소득 원천징수영수증으로 확인해야 한다).

김 부장이 이 1억원을 통장으로 바로 받으면 퇴직소득세 약 320만원을 그대로 낸다. 반면 같은 돈을 IRP로 옮긴 뒤 10년에 걸쳐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연금으로 받는 부분의 퇴직소득세에서 30%가 깎인다. 단순 계산으로 약 96만원이 줄어드는 셈이다. 만약 11년 이상 더 길게 나눠 받으면 그 구간은 40%까지 감면되니 절감액은 더 커진다.

감면 효과는 퇴직금 규모가 클수록 금액으로 더 크게 벌어진다. 퇴직금이 2억, 3억으로 올라가면 30~40% 감면이 만드는 차이는 수백만원 단위가 된다. ‘한 번에 받느냐, 나눠 받느냐’라는 단순한 선택이 자동차 한 대 값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시금으로 받아 통장에 둔 돈은 별다른 수익 없이 잠자는 경우가 많지만, IRP 안에 둔 돈은 굴러가며 추가 수익까지 만든다.

진짜 큰 차이는 퇴직금이 아니라 그 돈이 굴러서 번 수익에 있다

많은 사람이 놓치는 함정이 바로 이 부분이다. 퇴직금을 IRP에 넣으면 그 돈은 그대로 멈춰 있는 게 아니라 펀드나 예금으로 굴러가며 운용수익을 만든다. 그런데 이 운용수익에 붙는 세금이 받는 방법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린다.

IRP에 쌓인 운용수익을 연금으로 받으면 연금소득세 3.3~5.5%만 낸다. 그런데 이걸 중간에 일시금으로 빼버리면 기타소득세 16.5%가 부과된다. 세율이 3배 넘게 뛰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의 운용수익이 있다고 하면, 연금으로 받을 때는 세금이 33만~55만원이지만 일시금으로 빼면 165만원이 사라진다. 똑같이 번 1,000만원인데 받는 방식 하나로 100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

여기서 가장 흔한 오해를 교정해야 한다. “일단 퇴직금을 IRP에 넣었으니 절세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IRP에 넣은 뒤에도 연금이 아니라 일시금으로 인출하면 퇴직소득세 감면 혜택은 사라진다. 계좌를 옮긴 행위가 아니라 ‘연금으로 끝까지 받는 행위’가 절세의 조건이다. 계좌만 만들어두고 급한 일이 생겨 목돈으로 빼면, 감면받을 수 있었던 세금을 고스란히 토해내게 된다.

또 하나 자주 듣는 걱정이 있다. “사적연금은 연 1,500만원을 넘으면 종합과세된다던데, 퇴직금 연금도 그런 거 아니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을 재원으로 한 연금(퇴직소득 이연분)은 그 1,500만원 한도와 무관하게 분리과세로 끝난다. 종합과세 걱정 때문에 퇴직금 연금수령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1,500만원 기준은 세액공제를 받았던 본인 납입액과 운용수익에 적용되는 별개의 규칙이다.

왜 더 많은 사람이 연금으로 돌아서고 있을까, 숫자가 말해준다

실제 통계도 이 흐름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382조4,000억원으로 5년 사이 약 두 배로 불어났다. 과거에는 퇴직금을 받으면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 썼지만, 최근에는 연금으로 받는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최근 집계에서는 연금수령이 금액 기준으로 57.0%를 차지해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고, 계좌 수 기준으로는 87.0%에 달했다. 연금을 받는 계좌의 77.8%는 수령 주기를 ‘월’로 선택했다. 매달 월급처럼 받으면서 세금까지 아끼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연금수령이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다. 당장 큰 빚을 갚아야 하거나 사업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일시금이 합리적일 수 있다. 핵심은 ‘내 상황을 모른 채 습관적으로 일시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큰 손해라는 점이다. 적어도 두 선택지가 세금에서 얼마나 차이 나는지는 알고 결정해야 후회가 없다.

연금으로 받으려면 채워야 할 두 가지 조건

연금수령의 절세 혜택을 제대로 누리려면 두 가지 조건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는 나이다. 원칙적으로 만 55세 이후부터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55세가 되기 전에 IRP를 깨서 돈을 빼면 연금수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앞서 설명한 감면 혜택도 함께 날아간다. 둘째는 가입 기간이다. IRP 등 연금계좌에 가입한 지 5년이 지나야 연금수령 요건을 채운다. 다만 회사에서 받은 퇴직급여를 이전한 경우에는 이 5년 요건과 무관하게 55세 이후 연금으로 받을 수 있어, 퇴직금 재원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편이다.

또 하나 알아두면 좋은 개념이 ‘연금수령한도’다. 정해진 한도 안에서 연금으로 받으면 감면된 낮은 세율이 적용되지만, 한도를 초과해 한꺼번에 많이 빼면 그 초과분은 일시금처럼 취급돼 감면을 못 받는다. 쉽게 말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빼면 연금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같은 IRP라도 10년, 15년 단위로 천천히 나눠 받는 사람이 5년 만에 몰아 빼는 사람보다 세금에서 유리하다.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수령 기간을 길게 잡는 것이 거의 항상 이득이다.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오늘 확인할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실천 한 가지를 꼽자면, 퇴직급여를 일반 통장이 아니라 IRP 계좌로 받을 수 있도록 미리 계좌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퇴직금이 일반 통장으로 한 번 입금되고 나면 연금수령에 따른 퇴직소득세 감면을 적용받기가 까다로워진다. 반면 IRP로 이전해두면 일단 과세가 미뤄지고(과세이연), 이후 연금으로 받을지 일시금으로 받을지 천천히 결정할 여지가 생긴다.

오늘 할 수 있는 행동은 간단하다. 주거래 은행이나 증권사 앱에서 ‘IRP 계좌’를 검색해 개설 조건과 수수료를 확인하고, 본인의 퇴직 예상 시점과 퇴직금 규모를 메모해두는 것이다. 수수료는 금융사마다 다르고 일부는 면제되기도 하니 한두 곳만 비교해도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퇴직이 가까워지면 회사 인사팀에 “퇴직급여를 IRP로 이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면 된다.

퇴직금은 평생 한두 번 만져보는 큰돈이다. 그 큰돈에서 수백만원을 더 지키느냐 마느냐가, 거창한 재테크가 아니라 ‘어떤 계좌로, 어떻게 받느냐’라는 단순한 선택에서 갈린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 보지 말고, 그 뒤에 숨은 세금 규칙을 퇴직 전에 딱 한 번만 들여다보자. 그 한 번이 노후의 몇 달치 생활비를 지켜줄 수 있다.

⚠️ 투자 주의사항 —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투자·금융·부동산에 관한 전문적인 조언이 아닙니다. 세금 계산 예시는 가정에 기반한 단순 추정으로 실제 세액은 근속연수·금액·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투자 및 세무 결정은 독자 본인의 책임이며,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